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알 카에다]]의 [[반미]]화 ==== 소련의 철수로 전쟁이 끝난 후 알 카에다, 무자헤딘에서 활동하던 아랍인들은 본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이들의 모국이었던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세속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근본주의자였던 이들은 그저 골칫거리였으며, 거기다 당시 원자재 가격의 추락으로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던 아랍권은 경제 상황이 매우 나빴기에 무자헤딘의 귀환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설령 귀국하더라도 정부의 감시와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서 철수 직전 소련이 남기고 간 나지불라 정권의 정부군과 싸우기도 하였고[* 그나마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한창 경제 성장 중이었기에 이 두 국가 출신 무자헤딘들은 본국에서 제대로 우대받을 수 있었다.], 이후 [[제1차 체첸 전쟁]]이나 [[보스니아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걸프 전쟁]] 때 사우디를 돕기 위해 무자헤딘을 제공하려 했으나 사우디 측은 거절하고, 대신 다국적군이 사우디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에 빈 라덴은 크게 실망하여 사우디 정부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고 사우디에서 추방당해 수단으로 가게 된다. 미국을 위해 싸웠던 자신들이 하루아침에 토사구팽당한 것에 실망한 알 카에다 지도자들은 반미 노선을 취하게 되고 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하게 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아프간의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던 중국 또한 된서리를 맞았다. 훗날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을 비롯해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주의 단체들은 소련-아프간 전쟁에서 영감을 받고 아프간에 싸우러 갔던 이들을 중심으로 중국 정부에 대항해 테러와 항쟁을 벌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